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토리오 포초 (문단 편집) == 일화 == * 포초의 감독 생활 최전성기 당시 이탈리아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집권 아래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포초는 무솔리니가 대표팀을 파시스트의 선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럼에도 안티 파시스트까지는 아니었는데 당시 이탈리아에서 그런 활동을 대놓고 하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출처: G. Ormezzano: Football: a World History: Longanesi, Milan, 1989, ISBN 88-304-0918-9] * 포초는 1938년 월드컵 당시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이후#s-2.1|4강전]]을 앞두고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썼다. 포초가 이끌던 이탈리아 대표팀은 당시 [[파리(프랑스)|파리]]에서 8강전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를 상대로 승리한 이후 4강전이 열릴 [[마르세유]]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의 일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4강전 경기 다음날 마르세유에서 파리로 가는 단 한대의 비행기가 전석 매진이 된 것. 그 이유를 알아보니 브라질 축구팬들이 결승전을 대비해서 표를 잔뜩 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코트 디아술에서 일광욕을 하는 브라질 사람들을 만나 이탈리아가 올라갈 수도 있으니 비행기 티켓을 일부 팔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우리가 이탈리아를 이기고 당연히 파리로 갈텐데 왜 비행기 티켓을 넘겨달라 하느냐'는 식으로 거만하게 대답을 했고, 포초는 이를 선수들에게 그대로 말하여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하였다. 결국 이탈리아가 브라질에 2대1로 승리하였지만 브라질 축구팬들은 항공권을 팔지 않았고 이탈리아 선수들은 기차를 이용해 파리로 올라가야만 했다. * [[후고 마이슬]], [[허버트 채프먼]] 등과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그들은 유럽을 대표하는 축구계의 명감독으로 전부 축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